♨︎

2017. 2. 7.

춘천 온 것 어떠냐고 아버님이 처음 물어보셨을 때, 저희야 뭐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니까 서울이나 여기나 똑같다고 대답했다. 서울이 아니어도 우린 잘 살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뜻으로. 그런데 그 뒤로도 뵐 때마다 계속 같은 질문을 하셔서 이제는 좀 그만 물어보셔도 좋을텐데 하던 참에, 전에는 알아채지 못한 소년 같은 표정이 아버님 얼굴에 언뜻 비쳤고, 그제야 아버님 마음을 지금껏 완전히 엉뚱하게 읽은 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쪽으로 내가 무심하다는 것도 함께.
춘천 좋아요. 여기 오기 잘했어요!


집 주변 고양이들.
모두 지나는 고양이에게 한 번씩 말 걸어 주는 분위기여서 그냥 길을 걷는 걸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반타이. 내가 이런 공간과 메뉴 구성에 잘 반한다는 걸 다시 알게 해 준 곳. 거의 이 삼 일에 한 번은 점심 먹으러 가고 있다. 춘천이 아니어도 어디에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나는 이것만으로 되는 사람이어서.

2015. 12. 27.

이달엔 여러 가지로 움직일 일도 많았고 생각할 것도 많았는데 의외로 마무리는 깔끔했다. 너무 먹어서 체한 것만 빼면 밖에서 배탈 난 적이 없었고. 그걸로도 충분히 별 탈 없이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게서 이것만 완전히 해결되면, 괜히 상관없는 사람 미워할 일도 없을 거고 불편하던 음식도 재미로 맛볼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짜증이 폭발할 일도 없겠지. 역시. 진작에 내가 유산균을 먹었어야 되는 거였다...

2015. 12. 20.

25세 3개월 6일

1949년 1월 16일 일요일

 

 오른쪽 윗니와 그 옆 송곳니 사이에 낀 대파의 섬유질을 끄집어 내려고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손톱으로, 다음엔 명함 모서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냥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그러나 대파는 없었다. 내 잇몸이 잘못된 정보를 보낸 게 문제였다. 예전에 아팠던 기억 때문에 이런 식으로 속은 게 처음이 아니다. 잇몸 스스로 망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p.163

 


25세 5개월 25일

1949년 4월 4일 월요일

 

 어제 난 카롤린 양에 대해 관찰한 바를 일기에다 썼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들긴 한다. 질문: 내 몸이 주변 사람들의 기질에 대한 명쾌한 은유를 이룰 때, 그 내용을 내면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할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 대답: 그럴 권리가 없다. 그렇게 판단하는 주된 이유는? 내면 일기를 쓰다 보면 사실만을 기술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다 욕망의 소스를 뿌리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아가씨의 기질에 부합하는 다른 은유들도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는 것도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우리 피를 몰래 빨아먹고 살면서도 쉽사리 쫓겨나는 적이 없는 진드기라든가,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을 난데없이 깨게 만드는 황색포도상구균이라든가. 맞다, 맞다. 내면 일기엔 쓸 필요가 없다!

p.169

 

<몸의 일기>

2015. 12. 6.